동명유고(東溟遺稿)
근현대기의 승려인 동명선지(東溟善知)의 시문을 모은 책.
[천태암중수화문(天台庵重修化文)]
부처님은 사생(四生)의 자부(慈父)이시고 그분의 도는 대자대비이십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 귀한 존재라 할 것입니다. 선남선녀가 기둥을 세우고 사찰을 건립해왔고 제십(帝什)의 성심(誠心)은 미미하지 않아 금(金)을 내놓고 동산을 희사했으며 수달(須達)의 대원(大願)은 다함이 없었으니 대저 복(福)을 심는데 이를 버리고 무엇을 취하겠습니까.
이 아미산 천태암은 16성현(16아라한)이 상주(常住)하는 도량이며 칠원성군(七元星君)이 강림하는 청정한 곳입니다. 봉우리의 형상이 평지에서 용출(聳出)하였나니 서천(西天)의 비래산(飛來山)과 같으며 신선경계의 바위와 낭떠러지가 높게 드리워져 흡사 동토(東土)의 소림굴(小林窟)과 같습니다. 복을 구하고 장수를 바램은 산이 높거나 물이 깊은데 있지 않나니 재계(齋戒)하고 치성(致誠)을 드림이 하필 건물이 크고 넓은 집이어야 하겠습니까. 이곳은 참으로 해동의 승지(勝地)이며 호남의 명구(名區)이니 응진중령(應眞衆靈16나한)의 자취가 밝게 빛나고 우뚝함의 기틀을 더하니 도(道)가 절대 무너지지 않으며, 부처님은 오랜 세월 그 유풍(遺風)이 늠름하고 그 길상한 사자좌가 여전하나니 발원함에 따라 그 감응함이 마치 달이 천강에 비추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동서남북 사방의 선남선녀님들이 귀의하시면 봄에 만국(萬國)을 여행하는 것과 같으며 모든 사람들의 복덕과 수명이 이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성함과 쇠함(盛衰), 차고 비는(盈虛) 세월이 흐르고 막히고 트이는(否泰) 운세가 잇달으니 만덕(萬德)을 지닌 존상(尊像)이 풍우를 피하지 못하고 공연히 솔개나 참새가 왕래하고 절이 다소간 넝쿨에 들어가 흡사 토끼나 여우가 거처하는 곳과 같은지라 비단 수행납자들만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이 아니라 뜻있는 이들이 느끼는 바가 되었습니다. 향이 쌓이거나 향연(香煙)이 피어오르지 않음이 단월(檀越신도)이 없어 그러한 것이 아니니 옥계(玉階)가 놓이고 만물이 가득 소생함은 반드시 왕성한 운세를 기다려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금년 초에 중건(重建)의 방책을 세웠으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선남신녀(善男信女), 군자들께서는 내놓기 어려운 환물(幻物)을 아끼지 마시고 불후한 좋은 인연을 깊이 심으십시오.
거거, 마노, 진주, 호박은 토산물이 아니라 거론할 필요가 없으나 땅, 목재, 베, 명주, 구리, 쇠, 금, 은은 있는 대로 희사하시길 바라옵나니 천의(天衣)를 입고 춤을 추는 천녀라 한들 어찌 세상에서 돈을 지닌 사람으로 공양함으로써 죽어서 연태좌(蓮胎座)에 들어 마침내 다음 생에 복을 받는 사람과 같겠습니까.
天台庵重修化文
東溟善知
佛爲四生之父 其道卽大慈大悲 人爲萬物之靈 所貴乎 善男善女 竪竿建刹 帝什之誠心不微 擲金施園 須達之大願无盡 凡於種祚 捨此奚取 唯此娥媚山天台庵者 卽時十六聖常之道場 七元君降臨之淨界 峰形平地聳出 況如西天之飛來山 仙巖碧落高懸 恰似東土之小林窟 求福求壽 不在山高而水深 致齋致誠 何必大廈而廣屋 眞是海東勝地 湖在名區 應眞衆靈跡昭昭 加峙之機道不壞 佛日老遺風凜凜 吉祥之猊座尙存 有願卽感 如月印千江 无論東家男西家女 歸依卽遂似春行萬國 棇是張三福李四命 然而盈虛有數 否泰相尋 萬德尊像 不避數十年風雨 空然鳶雀往來 一匣室坊盡入多少叢藤蘿 可恰狐兎棲息 非但衲子之寒心 亦爲志士之所感 香績无烟 非無檀越而然矣 玉階滿蘇 必待旺運而果乎 所以今年之首 奚設重建之方 伏願善信君子 莫惜離捨之幻物 深種不朽之良緣 玉車玉渠瑪瑙眞珠琥珀 非土産而莫論 土木布帛銅鐵金銀 隨所有以喜捨 披天衣舞天女 何如世間守錢之人 入蓮胎坐 盡是他日受福之士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
[천태암], 남산사, 동산사 모두 아미산(峨嵋山)에 있다.
[구호정(龜湖亭)]
목사동면 구룡리(龜龍里)에 있다. 청주한씨 금헌(琴軒) 한기동(韓基東)이 날마다 시를 읊던 곳으로 팔경시(八景詩)가 있다.
천태모종(天台暮鐘) 천태암(天台庵)의 저녁 종소리
모후숙람(母后宿嵐) 모후산(母后山)에 머문 남기(嵐氣)
십리명사(十里明沙) 십리의 맑은 모래
대황일제(大荒一带) 대황강(大荒江) 일대
삼탄어화(三灘漁火) 삼탄(三灘)의 어부횃불
유정목적(柳亭牧笛) 유정(柳亭)의 목동의 피리
병암귀운(屛巖歸雲) 병암(屛巖)에 돌아가는 구름
구산낙조(龜山落照) 구산(龜山)의 낙조
단암귀범(丹巖歸帆) 단암(丹巖)의 돌아가는 배
통명제월(通明霽月) 통명산(通明山)의 개인 달
지금은 구호정의 자취가 묘연하다. 인근에 거주하고 있는 청주한씨분들게 그 조상이 되시는 금헌선생에 관해 들어볼 필요가 있다.
곡성군지(1918)
천태암(天台庵)
아미산(峨嵋山)에 있으며 산 정상에 오르면 바라보이는 경계가 상연(爽然)하기 그지없다.
동사열전東師列傳)
범해각안(梵海覺岸:1820~96) 이 지었다.
이 가운데 용운처익 스님의 전기를 번역한 내용이다.
용운선백전(龍雲禪伯傳)]
스님의 법명(法名)은 처익(處益)이고 호(號)는 용운(龍雲)이며 당호는 경암(敬庵)이다. 성은 이씨(李氏)로서 가경(嘉慶) 계유년(1813) 10월 초칠일에 곡성 석곡의 용계(龍溪)에서 태어났으며 광서(光緖) 무자년(1888) 5월 초오일에 입적(入寂)하니 세수 76, 법랍 61이었다. 15세 되던 해에 조계산 송광사로 입산 출가했으며 17세 때에 남일(南日)장로를 은사로 머리를 깎았다. 이어 기봉(奇峯)선사를 계사로 구족계를 받고 제봉(霽峰)선사로부터 선참(禪懺)을 받았으며 27세 되던 해에 향을 사르고 보봉(寶峰)선사로 부터 법통을 이어 받았다.
스님의 문정(門庭)은 높고 넓었으며 법계(法系)의 연원(淵源)이 울흥하였다. 학문은 내전과 외전에 두루 통했고 글씨는 창암(蒼巖) 이삼만(李三晩)과 견줄만했으며 그 문장은 종단에서 으뜸이었다. 그 인품은 소박하고 진실하였으며 지혜는 거울처럼 원명(圓明)하였다. 선원(禪苑)에서 도가 높았으며 그 명성이 유림(儒林)에까지 전해졌으니 ‘목서(木樨) 향내를 맡았는가?’ ‘매실이 익었음을 알겠구나.’의 경지에 이르렀다.
침명(枕溟)스님에게서 온갖 경론(經論)을 익히고 인파(仁坡)스님을 찾아가 모든 선교(禪敎)를 배웠다. 옛 현인의 지위를 이어받아 신참 대중을 가르치다가 해운(海雲)처럼 모여든 대중들의 법석을 버리고 홀로 선정관(禪定關)에 들었다.
조정으로부터 호남표충사도총섭의 직을 받고 또한 영남표충사도총섭의 직을 받았으며 도내도총섭의 직위를 받았다.
을유년1885) 5월에 특히 판서 교지를 받았다. 봉은사의 간경(刊經), 해인사의 인경(印經), 통도사의 계단(戒壇), 태고사(太古寺) 중수, 갈래사(葛來寺) 석탑, 회암사(檜巖寺) 산송(山訟), 임인년(1842) 본사(本寺송광사)의 회록(回祿화재)중창에 모두 화주(化主)로 참여하였다.
경신(1860) 신유(1861) 양년에 지봉(智峯)스님과 더불어 해남의 표충사를 중수하고 전주 송광사 삼불(三佛)을 개금했으며 보성의 대원사(大原寺), 곡성 도림사(道林寺)의 길상암(吉祥庵)에 있는 나한전, 운봉의 백장암(百丈庵), 곡성의 천태암(天台庵), 금산사(金山寺) 대법당, 본사(송광사)의 용화(龍華) 보제(普濟) 도성(道成) 등의 전각(殿閣)을 모두 중수하였다, 몸을 돌보지 않고 애써 이 모든 일을 성취하였으니 뉘라서 이 일을 감당하리오.
스님은 내외(內外)의 재보(財寶)를 두루 갖추었으니 법시(法施)로 중생을 구제하고 재시(財施)로 예수재(豫修齋)를 봉행하는 등 스스로 간탐(慳貪)을 파하여 제거하는 삶을 살았다..
우리가 선사를 돌아보건대 당연히 백암(栢庵)의 가풍이며 묵암(黙庵), 벽담(碧潭)의 기풍으로 감로사(甘露寺천은사)와 보조(普照)의 도량을 더욱 진작시켰다. 수계수선(受戒受禪)하는 무리 가운데 뒤를 이을 인재가 많았으니 학(學)을 받고 법(法)을 얻은 무리가 벼나 삼대처럼 줄지어 섰다. 문집과 행장(行狀)이 문인에게 간직되어 있으니 문인(門人)으로는 응해성홍(應海晟弘), 한운한오(漢雲漢悟), 구연법선(九淵法善)이 있다. 한운(漢雲)의 제자로 법해봉주(法海琫注)가 있어 기골(氣骨)이 있고 경학(經學)을 갖추었으니 봉의 꼬리라 일컬어질 만하다.
師名處益 號龍雲 室曰敬庵 姓李氏 谷城石谷坊龍溪人 嘉慶癸酉十月初七日生 光緖戊子五月初五日寂 世壽七十六 法臘六十一 十五出家於曺溪山 十七祝髮於南日長老 受俱戒於寄峰禪師 受禪懺於霽峰禪師 二十七拈香於寶峰禪師 門庭高廣 淵源蔚興 學通內外 筆參李[三晩] 文孟宗 其局朴實 智鑑圓明 道高禪苑 聲傳儒林 聞木樨香乎 看梅子熟矣 參枕溟師受諸經論 訪仁坡師請聽諸禪敎 奪古賢石領新參衆 捨衆海雲集之席 入獨修禪定之關 贈湖南表忠祠都摠攝之職 又贈嶺南表忠祠都摠攝之職 又受道內都摠攝之位 乙酉仲夏特下判書敎旨 若夫奉恩寺之刊經 海印寺之人經 通度寺之戒壇 太古寺之重修 葛來寺之石塔 檜巖寺之山訟 壬寅之本寺回祿重創 皆爲化主 庚申辛酉兩年 與智峰 重修海南之表忠祠 全州松廣之三佛蓋金 寶